춘천 박씨
심각한 이야기, (2004/01/23 06:55)
밀양박씨말고도 박씨가 있는가.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연암박지원은 반남박씨다. 반남이나 밀양박씨는 6박 혹은 8박이라고 해서 잘나가던 집안에 속한다. 춘천박씨는? 우린 잘 못나간 박씨에 속한다. 하기야 춘천같은 산골에서 서울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못나간 것은 조선시대의 일이고, 고려때는 잘나갔다.

명절때마다 아주머니들이 말씀하신대로, 박서방네 아저씨들은 굉장히 잘난체 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조선때 이야기는 별로 할것이 없고, 고려때 할아버지 한분이 유명한분이 계신다.

고려의 공신이신 박항할아버지께서는 굉장히 공부를 잘하시고, 승진도 잘하시고, 또 인품도 뛰어나셨다, 고한다. 하지만 유훈으로, "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아!" 라고 말씀하셔서리.. 조선조에는 후손들이 과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나가지 않았다" 고한다. 못나간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암튼, 박항할아버지는 포은정몽주의 상소로 시호를 받았다. 라고 상당히 긴 할아버지의 벼슬이야기는 끝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퇴계이황의 어머니도 춘천박씨라고 한다.

어릴때 순천박씨와 춘천박씨가 헷갈렸더랬는데, 설에 듣고 온 이야기가 떠올라 구글을 뒤져보니, 조상님중에 유명한 분이 많았다. 또, 인터넷에는 아버지의 항렬이랑 내 것, 그리고 내 자식이 쓸 것까지 다 인터넷에 올라있다.

조상님들의 이야기나 종친회이야기를 가만히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우리집안 남자들의 고집은 사실은 우리씨족 전체가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집안이란 건가.

참고: 강원도민일보, 뿌리정보

P.S. 아직도 성씨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역사공부하는 대학원생들의 아르바이트 중에는 족보꿰맞춰주기가 있다. 굉장히 돈이 많아야 시킬 수 있는 일이다. 뭐 그런일이야 조선조에도 계속 있던 일이고, 다만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우리가 쓰는 성씨의 상당수가 사실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제시대에 상당수의 돌쇠들이 자기가 모시는 상전의 성씨를 따라서 호적에 등록이 되었다는 것. 조선후기에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긴 했지만 지금 내 조상은 돌쇠였소.. 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봐서는 상당히 타당한 이야기인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집안은 어찌구 저찌구라고 하면서 절대 자신은 양반의 후손이라고 말한다. 나는?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집안은 산골에 들어가있었기 때문에 돌쇠를 부릴만큼 잘사는 씨족은 아니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춘천박씨들이 다들 알고 지낸다, 고 말하면서 나도 우긴다.

그렇게 우기면 어딘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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